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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가는 쿠셋(야간침대열차)에서
4월 14일 (목) 아침 6시 반쯤, 쿠셋 안에서 눈을 떴다.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간단히 세수하고 몸 상태를 점검했다. 호텔에서 잔 것보다는 못하지만, 밤 기차를 탄 것 치고는 견딜만 하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에 들어섰다. 이미 유럽연합(EU)에서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흐려지고 있는 것 같다. 차장이 피렌체에서 내릴 손님들에게 여권을 되돌려 주고,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갖다 준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 국경지방이 산이 험해 기차가 줄곧 터널로만 달린다. 계속 터널로만 달리니 아침이 되어 해가 떴는데도 알 수가 없다.
같은 침대칸에서 잔 그 스위스 여학생은 피렌체에서 내린단다. 잠시 복도에 서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지금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는데, 나흘간 스위스 집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성격이 밝고 상냥해서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스위스 여학생은 모국어인 독일어 이외에 불어, 영어, 이태리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부럽다. 내가 유럽 7개 나라를 보름만에 돌아다닌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미쳤단다(It's crazy !). 아침 7시 반쯤, 피렌체 손님들이 내린다.
로마행 손님들에게도 여권과 기차표를 돌려주고, 아침으로 빵과 커피 오렌지주스를 준다. 석과장과 함께 빈 침대칸에 가서 아침을 먹고 로마 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탈리아의 산과 들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닮아 정겹게 느껴진다. 반도국가라는 것과 성질 급하고 다혈질인 것까지 비슷하다고 하던데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 피렌체까지는 날씨가 흐리더니 로마쪽으로 내려가면서 화창해진다. 로마가 나를 기다린다.

로마 - 떼르미니역, 콜로세움, 포로노마노, 빨라티노언덕

아침 9시 50분, 드디어 이탈리아 로마 떼르미니역에 도착했다. 우선 지하 짐 보관소에 내려가 짐을 맡겼다. 짐 한개당 5시간까지는 3.8 유로에다 그 다음부터는 한 시간당 0.6 유로가 붙는다. 석과장은 남은 스위스프랑을 유로로 바꾼다. 동전은 안 바꿔준다. 여행안내소에서 로마시내 관광지도를 받아들고 힘차게 로마 관광에 나섰다. 악명 높은 로마의 소매치기를 늘 염두에 두고, 극도의 경계심을 유지하며, 여행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녔다.
아침 10시 50분, 처음 찾은 곳이 콜로세움이다. 10 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콜로세움은 2000년전 건설된 돌로 만든 원형경기장으로 그 크기와 웅장함에 압도당할 수 밖에 없었다. 주변이 온통 유적들이라 카메라를 들이대면 다 작품이 된다. 콜로세움 아래 위층을 모두 구경하고, 바로 옆에 우뚝 서 있는 개선문을 돌아보고, 곧바로 로마의 유물 덩어리 포로로마노를 구경했다.
포로로마노에는 로마의 신전들과 원로원 사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하나 하나의 유물이 2000년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간직되어 있다.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유물덩어리 그 자체를 음미하면서 구경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냥 수천년전의 유적을 눈길 한번 스치는 걸로 지나쳤다. 천년제국 로마의 영화가 녹아있는 포로로마노를 지나 깜삐똘리오 광장을 거쳐, 뒷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빨라티노 언덕이 나온다.
빨라티노 언덕에도 수 많은 유물들이 널브러져 있고 그 유물들을 숲이 겨우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언덕에 오르니 로마시내가 시원스레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황제나 된냥 로마시내를 눈 아래 굽어보고, 뒷쪽으로 돌아가 대전차경기장을 내려다보면서, 눈앞에 벤허의 4두마차 경기를 환영을 그려보았다. 이렇게 조금 로마의 감흥에 젖어 여유를 부리고 싶었지만, 아직도 볼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아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들었다.

로마 - 진실의 입, 베네치아광장, 나보나광장, 점심은 피자로

다음 행선지인 진실의 입을 찾아가려는데, 출구를 못 찾아 다시 들어온 곳으로 돌아가 포로로마노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깜삐똘리오 광장 옆 샛길을 통해 내려가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진실의 입이 있는 성당을 찾았다. 잠시 앞에 있는 관광객들이 사진 찍는 것을 구경하다가, 내 차례가 되어 나도 진실의 입에 손을 집어 넣고,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놀라는 표정을 디카에 담았다. 뒤에서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오드리햅번 언니가 생각났다.
진실의 입을 구경하고, 베네치아 광장으로 걸어가려는데, 석과장이 도저히 못 걷겠단다. 햇볕은 따갑고 날씨는 더웠다. 난감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스를 타기로 하고, 여행안내서를 읽고, 주변사람들에게 묻고, 좀 머리를 써서 석과장이 담배가게에서 1 유로짜리 75분 이내에 지하철과 버스를 3번까지 갈아탈 수 있는 1회권을 사왔다. 베네치아 광장으로 가는 버스번호를 찾아, 44번 버스를 타고 베네치아광장까지 이동했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서둘러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좀 전에 샀던 1 유로짜리 1회권을 이용하여 나보나 광장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이거 참 편하고 싸고 좋다.
나보나광장에 도착하니 차량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넓은 광장에 온통 사람들이 꽉 차 있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 그림을 세워 놓고 파는 사람, 분수대 조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 나처럼 그냥 관광객이 엉켜 거대한 군중을 이룬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니, 배는 고프고, 온몸은 땀에 쪄들고, 목은 말라 갈증이 몰려온다. 나보나광장 주변에서 점심먹을 곳을 찾았다.
오후 3시쯤, 나보나광장 뒷편 골목으로 들어가니 다행히 피자가게들이 먹자골목을 이루고 있다. 문밖에 내 놓은 메뉴판과 그림을 보고, 가격을 보고 각각 4.9 유로에 피자 한판씩과 3.5 유로짜리 맥주 한잔씩을 시켜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피자 한판을 금방 해치웠다. 피자가 고소하고 맛있다. 이탈리아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소매치기 많고, 지저분하고 불친절한데다가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다-과는 달리, 제법 영어도 잘 통하고, 길을 물으면 대부분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다.

로마 - 빵떼온, 뜨레비분수, 스페인광장, 뽀뽈로광장

점심을 잘 먹고 나서, 다시 나보나광장에 나와 구경하고,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빵떼온을 찾아갔다. 웅장하고 균형잡힌 모습을 보며 참 멋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빵떼온 안에 들어가 하늘로 구멍이 뻥 뚫린 모습을 보았다. 혹시 소매치기가 고개를 들어 천정을 쳐다보는 관광객을 노리지 않을까하고 여행가방을 꼬옥 품에 안고서. 공기의 자연대류 현상에 의해 비가 와도 거의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는 신기한 현상을 여행안내서로부터 들었다.
빵떼온을 구경하고, 그 유명한 뜨레비분수에 이르렀다. 빵떼온에서 뜨레비분수로 가는 길을 찾기란 그저 사람들이 줄지어 가는 곳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될 정도로 관광객들이 코스를 따라 움직인다. 분수대 주변엔 관광객들이 발 디딜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믿고 나도 의식을 치르듯 동전을 던졌다.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찍어준 석과장이 고생이다. 동전을 하나 던지면서, 다시 로마에 돌아오기를 빌고 동전을 두개 던지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빈단다. 그럼 동전을 세개 던지면? 각자 알아 보도록...
사람들이 벌통에 벌처럼 달라붙어 있는 뜨레비분수를 구경하고, 스페인광장으로 향했다. 스페인광장에 이르니 오드리햅번 언니가 오르내리던 계단에는 전세계에서 온 수 많은 사람들이 빼꼭히 앉아서 쉬기도 하고, 얘기도 나누고, 애정도 나누고 있다. 나도 그 사람들 틈에 끼어 사진을 찍었는데, 이번 여행중 가장 맘에 드는 그림이 나왔다. 시계탑이 있는 언덕 건물은 보수공사중이어서 거대한 광고천막으로 가리워져 있다. 예쁘고 귀여운 오드리햅번 언니가 또 생각났다.
스페인광장 계단에서 잠시 쉬다가 오늘의 최종 목적지 뽀뽈로광장을 구경하러 가려는데, 석과장이 자기는 너무 피곤해서 이곳 스페인광장에서 그냥 쉬고 있겠단다. 그래서 나 혼자 뽀뽈로광장을 향해 걸었다. 뽀뽈로광장은 널직한 광장과 높은 탑, 벽면의 멋있는 조각작품들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왔던 길이 아니라 명품거리로 돌아서 왔다. 도중에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스페인광장에 돌아와 다시 석과장을 만나 로마 지하철을 타고 떼르미니역으로 돌아왔다. 퇴근길 러시아워라 그런지 지하철에 사람들이 무척 많아 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게다가 역마다 2-3분씩 정차를 하곤한다. 떼르미니역에서 5시간을 초과한 4시간에 대해 2.4 유로씩 추가요금을 내고 짐을 찾았다. 우리가 묵을 숙소가 로마시내가 아닌 공항옆에 있어 기차를 타고 가야한다. 다행히 유레일패스 소유자는 공짜로 떼르미니역과 공항을 오고 가는 셔틀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로마 - 찬물에 불린 컵라면, 쌀이 씹히는 햇반, 그래도 맛있다
약 30분을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역에서 연결된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니 로마에어포트힐튼호텔이 나온다. 주로 비행기 승무원들이 이용하는 거의 1급호텔이다. 그동안 다른 도시에서는 보통 모텔급 호텔에서 묵었는데, 여행사에서 이곳 로마의 호텔예약을 늦추다가 마침 교황이 돌아가는 바람에 시내에다가 예약을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비싼 이곳 호텔에다가 예약을 한 것. 좋은 호텔에 예약을 해 주고도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우리 직원들한테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체크인하고 배정된 방에 들어갔더니 시설이 참 좋다. 짐 풀고 씻고 저녁으로 서울에서 가져운 고추장, 참치캔, 컵라면과 함께 햇반을 먹으려는데, 워낙 좋은 호텔이라 커피포트가 없다. 할 수 없이 욕실 뜨거운 물로 햇반과 컵라면을 데워 봤지만 신통치 않다. 결국 찬물에 불린 컵라면에 쌀이 씹히는 햇반으로 참치캔, 고추장, 김을 곁들여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배가 너무 고프고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어서인지 찬물에 불린 컵라면과 쌀이 씹히는 햇반이 정말 맛있다. 아주 기억에 오래 남을 저녁이었다.
그렇게 냄새를 피우며 푸짐하고 만족스러운 성찬을 즐긴후, 음식냄새를 없애기 위해 남은 음식물을 포장해서 버리고 뒷정리를 깔끔하게 했다. 어글리코리안이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지. 지난밤 야간침대열차를 타고 로마에 도착해 오늘 하루 종일 황당할 정도로 무리한 일정으로 로마시내를 하루만에 주파하고 둘 다 뻗어 버렸다. 밤 11시 쓰러지듯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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